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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팁/역사탐방

경복궁 관람하기/야간개장/가는길/경복궁에대하여

경복궁 관람하기


경복궁은 경복궁역 3호선으로 가서 5번출구로 나가시거나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 10분정도 걸어오시면면 나옵니다.


경복궁은 계절별로 여는 시간이 다릅니다.



경복궁 야간개장은 예매를 해야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야간 개장의 경우 옥션에서 경복궁 야간개장을 예매하셔야 합니다.

http://ticket.auction.co.kr/Home/Perf/PerfDetailInfo_2014_RoyalPalace_Spring.aspx?echo_key=31467838


경복궁!






경복궁의 설립과 훼손/중건

 

경복궁의 설립

경복궁은 조선이 세워지고 나서 약 3년후에 세워졌습니다. 세워진 후 정도전은 태조의 명을 받들어 경복궁의 이름과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등 전각의 이름을 지었다. 경복궁은 새로운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을 하리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굳건히 조선을 대표하던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두 불타 없어져 버렸다.

 

 

경복궁의 훼손과 중건

경복궁은 1395년에 세워진 조선 왕조 제일의 임금이 사는 궁궐로 북으로 북악산이 자리잡고 있고, 정문에는 광화문 앞에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진 한양의 중심이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타 없어지고 난 후 경복궁은 270여 년간 복구되지 못하다가 1867년에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중건된 경복궁은 웅장한 모습을 되찾았다. 50여년간 경복궁이 유지되다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손에 의해 계획적으로 훼손되었다. 이후 경복궁은 조선총독부에게 소유권이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궁궐 자체를 가려 버렸다. 우리나라는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사업을 추진하여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2010년에 광화문이 복원 하였다.


 

경복궁의 구조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3개의 홍예문이 나 있는 높은 석축 위에 중층의 문루가 높이 앉아 있는 장려한 건물이다.

 

근정전

근정전은 경복궁의 으뜸인 법전으로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궐에서 가장 장엄한 중심건물로 왕권을 상징한다.

       


 

경복궁의 구조

 

사정전

사정전은 왕의 공식적 집무실(편전)이다. 근정전은 왕이 정사에 임할 때 깊이 생각해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업무보고와 회의,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이 이곳에서 펼쳐졌다. 사정전은 옆에 있는 만춘전과 천추전이 온돌방을 갖추어 사계절이용할수 있게 만든 보조편전이 있다.     

 


 

경복궁의 구조

 

강녕전과 교태전

강녕전은 왕의 침전,일상생활을 하는 곳으로 왕이 이곳에서 독서와 휴식 등 신하들과 정무를 보기도 했다. 9개 방으로 가운데 방을 왕이, 주위의 방을 상궁이 숙직하였다. 교태전은 경복궁 창건 당시 지어진 건물은 아니라 세종22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어진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궐의 살림을 맡아서 지휘하던 곳이라 할 수 있다.

  

 


 

경복궁의 구조

 

흠경각과 함원전

흠경각은 농업 발전을 위해 천체의 운행과 시간의 정밀함을 위하던 왕의 고충을 알 수 있는 건물이다. 세종은 1438년에 흠경각 건립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옥루기륜, 양부일구 등의 시간 측정기구와 간의 라는 천문관측기구를 만들어 설치했다.

 

 

 

경복궁의 구조

향원정과 건청궁

경복궁안에는 네모난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그 중앙에 향원정이 있다. 향원정은 세조 때 세운 취로정 터에 건청궁을 지으면서 조성한 것이다. 향원정 북쪽, 경복궁 가장 깊숙히 건청궁이 있다. 고종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 체제를 구축, 정치적 자립을 하기 위해 건청궁을 세웠다. 현재 향원정은 보물 제 1761호로 지정되어있다.



경복궁의 구조

경회루

경회루는 왕이 규모가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이 올 때 사신접대를 하던 곳 이다. 경회루에 올라가서 인왕산과 궁궐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고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경회루는 정면 7, 측면 5칸으로 넓이는 931m2으로 대규모 목조건물이었다. 2층에는 마루가 있어서 연회장으로 이용했다.

임진왜란으로 아름다운 경회루는 불에 타 돌기둥만 남았다. 그것을 1867년에 재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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